패배주의와 사회비판의 모순


어떤 일에 성공하거나 경쟁에서 이기겠다는 자신감이 없이, 소극적이며 일을 하여 보기도 전에 포기하는 태도나 사고방식.

패배주의의 정의다.
간단히 말해, 지는 데 익숙해져있다는 소리다. 사람들은 이 패배주의란 단어에 열등감이라는 의미까지 첨가해 쓰는 경우가 많다. 사회에서 이루어지는 순위경쟁에서 밀려난 이들이 좌절하거나 분노할 때, 사회는 그들을 '패배주의에 찌든 이'라고 질타하기 마련이다. 가혹한, 어떤 경우에는 스스로 참가하기를 선택하지도 않은 경쟁에서 승리를 거두지 못할 경우, 우리는 오직 'Try again'만 외치는 것이다. 불타는 도전심과 경쟁심 외의 패배에 대한 모든 감정은 모두 무시하고 짓밟아버린다.

"이건 불공평한 게임이야!"
누군가 외쳤다.
사람들은 그의 말에 동의하지도, 부인하지도 않는다.
"그러는 넌 누군데?"
반문한다.

발언자가 서울대생이라면 비판적 사고까지 가능한 수재로 칭송받을 것이다. 그러나 소위 '대학의 레벨'이 점점 낮아질 수록 사람들의 동의를 구하기란 쉽지 않을 것이다. '그건 니가 공부를 못했으니까 하는 소리지. ㅋ' 돌아오는 반응이다.

어째서 십대 시절 학업성취를 잘 이루지 못했던 사람은 사회비판을 할 수도 없게 되었을까. 이것은 굉장히 모순된 상황이다. 자본주의 거대 권력이 만들어낸 '누가누가 말 잘듣는 성실한 일꾼인가' 콘테스트에서 수석을 하여 권력자의 무릎에 앉아 있는 자만이 사회권력을 비판할 수 있다? 도대체 혁신이란 것이 일어날 가능성이 얼마나 되겠는가?

더 무서운 건 이런 생각이 경쟁에서 '도태된' 자들에게 더 팽배한 것이다. 나는 이것이야말로 진짜 패배주의가 아닐까 생각한다. 나는 이미 약육강식의 세계에서 도태되었으니 사회가 부당하다고 들고 일어날 자격이 없다는 생각. 그리곤 자기 자식에게 오직 살아남는 길은 경쟁자를 제거하고 네가 저 달콤하고 안락한 난로 옆 무릎에 앉는 것 뿐이라고 패배주의를 되물림한다. 그리고 그 자식은 아무리 잘 되봤자 고작 사자에게 자기 친구를 밀어놓고 평생을 자신도 잡아먹히진 않을까 두려워하며 오래오래 사는, 어린 양밖에 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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